아관파천, 독립협회
▪ 아관파천
(1) 배경
• 을미사변•단발령으로 반일 감정 고조 (을미의병 봉기)
• 을미사변 후 고종의 신변 위협
(2) 전개
• 춘생문 사건 → 아관파천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 이동)
(3) 결과
• 고종의 김홍집과 유길준 체포 명령(친일 내각 붕괴), 친러 내각 수립
• 을미개혁 중단 (단발령 철회), 을미의병 해산 권고 조칙 발표, ‘서양 열강의 이권 침탈 본격화’
• 내각 폐지 → 의정부 설치(국왕이 최종 결정권을 가짐), 지방 행정 구역 개편(23부 → 13도)
▪ 독립 협회 (1896~1898)
• 배경
1) 아관파천 이후 열강의 이권 침탈 심화, 친러 내각에 대한 반감 고조
2) 1895년 12월 서재필 귀국 →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독립신문 창간(최초의 민간신문)
• 창립 : 서재필, 윤치호 등 개화 지식인들이 주도 (대부분 정동 구락부 인사들)
• 주도 : 진보적 지식인 (서재필, 윤치호, 남궁억, 이상재) + 정부 관료(안경수, 이완용)
• 참여 : 도시 시민층, 학생, 노동자, 여성, 천민 등 광범한 사회 계층 참여
• 활동
1) 민중 계몽 운동
- 독립신문 간행, ‘대조선독립협회회보’ 창간(기관지),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 건립,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개수
- 강연회•토론회 개회, 정부의 외세 의존적 자세 비판 → 정부 관료 탈퇴 → 민중지지 올라감
2) 자주 국권 운동
고종의 환궁요구 → 고종의 경운궁 환궁(1897) → 대한제국 수립(1897) → 구국선언 상소문 발표, 만민공동회 개최(1898)
3) 이권침탈 저지 운동
-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 저지, 일본의 석탄고 기지를 반환하게 함
- 만민공동회를 열어 러시아의 군사 교관단과 재정 고문단을 철수시킴, 한러 은행 폐쇄
- 러시아의 목포, 증남포 해역 토지 매도 저지, 프랑스•독일의 광산 채굴권 요구 저지
- 이권 양도와 관련된 이완용을 제명 처분
4) 자유 민권 운동
의회 설립 운동, 국민의 신체와 재산권 보호 운동, 언론과 집회의 자유권 쟁취 운동, 연좌제 및 노륙법 부활 저지 운동
5) 자강 개혁 운동
의회 설립에 의한 국민 참정 운동과 국정 개혁 운동 본격적 전개 → 보수적 내각 퇴진 → 진보적 내각(박정양) 수립 → 관민공동회 개회(헌의 6조 결의) → 고종의 수용 → 관선 25명, 민선 25명으로 구성된 중추원 관제 반포
• 해산
독립협회와 보수 세력과의 대립 → 익명서 사건 → 고종의 독립 협회 해산령 → 독립협회 회원들이 만민공동회를 열고 시위 → 정부가 황국협회 보부상 동원 → 만민공동회 탄압 → 군대를 동원해 독립협회 해산
• 의의
-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회•정치 단체, 근대 의식과 자주 국권 의식 확산에 기여, 의회 설립 운동 전개(입헌 군주제 지향)
- 민중을 계몽하여 개화 운동에 결합(민중에 바탕을 둔 개혁 운동), 한말 애국 계몽 운동에 영향
• 한계
러시아의 이권 침탈은 강경하게 대응했으나 미국, 일본, 영국의 이권 침탈은 상대적으로 우호적, 우리 역사상 처음 시도한 의회 설립 실패
※ 헌의 6조
1. 외국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관민이 힘을 합해 전제 황권을 견고하게 할 것
2. 외국인과의 이권에 관한 계약과 조약은 각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 날인해 시행할 것
3. 국가 재정은 탁지부에게 전관하고, 예산과 결산을 국민에게 공포할 것
4. 중대 범죄를 공판하되, 피고의 인권을 존중할 것
5. 칙임관을 임명할 때에는 정부에 그 뜻을 물어서 중의에 따를 것
6. 장정(정해진 규칙)을 실천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