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1884)
(1) 배경
• 국내 : 임오군란 이후 청의 내정 간섭 심화, 민씨 정권의 개화당 탄압
김옥균의 일본 차관 도입 실패 (급진 개화파 입지 위축)
• 국외 : 청프 전쟁(1884)을 위해 조선 주둔 청국군 일부 철수
일본 공사의 재정과 군가 지원 약속
(2) 전개
우정총국 낙성식 축하연을 이용해 급진 개화파가 정변을 일으킴 → 반대파 제거 → 개화당 정부 수립 → 혁신정강 공포
(3) 결과
• 청군의 창덕궁 공격 → 급진 개화파의 군대 및 일본군 패퇴 (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남)
• 개화당 일파가 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하자 흥분한 민중들이 일본 공사관 파괴
• 한성조약 체결 (조-일, 1884) : 일본 공사관 신축비와 배상금 지불, 사죄 및 배상금 등
• 텐진조약 체결 (청-일, 1885) : 청 • 일 양군 철수, 조선에 군대 파견 시 상대국에게 미리 통보
(4) 의의
• 근대 국민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최초의 정치 개혁 운동
• 청과의 사대 관계를 끊고 국가의 자주권 확립 시도
• 봉건적 신분 제도 타파 시도, 내각 중심의 입헌 군주제 도입 시도
(5) 한계
• 위로부터 전개된 근대화 운동의 선구 (민중지지 결여), 토지 개혁 X
• 일본에 의존, 급진 개화파의 정치적•군사적 기반 미약
갑신정변 이후의 국내외 정세
1. 조선을 둘러싼 청과 일본의 대립 격화
2. 조•러 비밀 협약 추진 → 청의 간서으로 실패
3. 거문도 사건(1885~1887) : 조•러 밀약설 →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한다는 구실로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 → 청의 중재로 철수
4. 한반도 중립화론 대두
- 배경 : 갑신정변 이후 조선을 둘러싼 청과 일본의 대립 격화,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으로 한반도 긴장감 고조
- 중립화론 : 조선 주재 독일 부영사 부들러와 유길준이 주장 → 받아들여지지 않음
5. 조•러 육로 통상 조약(1888) : 경흥 개방
6. 방곡령 사건(1889) : 함경도(관찰사 조병식). 황해도(관찰사 조병철)
갑신정변 14개조 개학 정강
1. 청에 잡혀간 흥선 대원군 귀국 및 청에 대한 조공 허례 폐지
2. 문벌 폐지, 인민 평등,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
3. 지조법 (조세 제도)개혁 (토지 개혁X)
4. 내시부 폐지 → 국왕의 권력 제한
5. 탐관오리 처벌 → 국가 기강 확립, 민생 안정
6. 각 도의 환상미(환곡미) 폐지 → 환곡 제도 개선
7. 규장각 폐지 → 국왕의 권력 제한
8. 순사를 두어 도둑 방지 (근대적 경찰 제도 확립)
9. 혜상공국 혁파 (보부상의 특권 폐지 → 자유 상업 발전)
10. 귀양살이 및 옥에 갇혀 있는 자를 정상을 참작해 감형
11. 4영을 1영으로 축소, 근위대 설치 → 군제 개혁 (군의 통솔권 확립)
12. 모든 재정은 호조에서 일원화
13. 대신과 참찬은 의정부에 모여 정령을 의결하고 반포 (입헌군주제)
14. 의정부와 6조 외에 불필요한 기관 폐지
▪ 홍영식
- 1881년 조사 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 시찰
- 1883년 보빙사로 파견되어 미국 방문
- 1884년 우정국(우정총국) 총판에 임명됨
- 1884년 갑신정변 때 청군에게 피살
▪ 김옥균
- 1882년 3차 수신사 박영효와 고문으로 일본 파견
- 1883년 차관 교섭을 위해 일본 방문
- 1884년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 망명
- 1894년 상하이에서 홍종우에게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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