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 인조반정, 정묘호란, 병자호란, 북벌론과 나선정벌

history

by powerup125 2020. 10. 18. 11:00

본문

반응형

광해군의 중립 외교

임진왜란 때 광해군과 북인들의 의병 활동 주도 광해군 재위기 북인 집권

회퇴변척 (1611)

 - 북인 정인홍이 이언적 (회재)과 이황(퇴계)을 비판

 - 조식 옹호 남인의 반발

 

대내 정책

경기도 대상 대동법 실시(1608)

양전사업 : 양안 호적 작성

성관과 무기 수리, 군사 훈련 실시 등 국방력 강화

허준을 지원해 <동의보감> 편찬 마무리

경희궁(경덕궁) 건립, 왜란 때 소실된 창덕궁 중건

왜란 때 소실된 사고를 5대 사고로 정비

 

대외정책 : 중립 실리 외교

배경 : 여진족 급성장 후금 건국(1616) 명에 선전포고 명의 조선 원군 요청

전개 : 명 지원을 위해 강홍립 파견 강홍립 후금에 파견

결과 : 명의 원군 요청 지속 광해군 적절히 거절, 후금과의 친선 도모

 

 

인조반정 (1623)

원인

1) 중립외교 정책에 대한 서인의 반발

2) 폐모살제 (인목대비 유폐, 영창대군 살해, 임해군 사사)

전개 : 서인의 반정 주도 광해군 폐위, 북인 몰락, 인조 즉위

영향 : 반정 이후 서인은 남인 일부와 연합하여 정국 운영 상호 비판적 공존 체제

 

정묘호란(1627)

배경

1) 서인들의 친명배금 정책

2) 모문룡 가도 사건(1622), 이괄의 난(1624)

전개 : 광해군 보복 명분으로 후금 침입 인조의 강화도 피난

의병 : 정봉수(철산 용골산성), 이립(의주)

결과 : 후금과 형제 관계 체결 (정묘약조)

 

모문룡 가도 사건 (1622)

명의 모문룡이 후금이 차지한 요동 지방을 빼앗기 위해 평안도 가도에 주둔 후금 자극

 

이괄의 난 (1624)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

함양 함락 인조 공주 피난 진압 후 이괄의 잔당 후금으로 도주 조선 정세 밀고

 

병자호란(1636)

배경 : 후금이 국호를 청으로 변경 군신관계 요구 주전론 (김상헌, 윤집 등) VS 주화론 (최명길)

전개 : 청 태종의 침입 임경업의 백마산성(의주) 우회 개경 함락 한양 함락 인조, 조현세자 남한산성 피난 45일간 저항 삼전도의 굴욕 (청 태종에게 항복, 삼전도비)

결과

1) 군신관계 체결, 명과의 관계 단절

2) 소현세자, 봉립대군, 척화론자 (주전파) 3학사 청에 압송

3) 서북 지역 황폐화, 수만 명의 백성이 청에 인질로 끌려감 (환황녀 문제)

영향 : 청에 대한 적개심과 문화적 우월감(열등감X)으로 북벌론 제기

 

북벌론과 나선 정벌

북벌운동

1) 효종

송시열, 송준길, 이완 중용 어영청 강화 (군대 양성)

명에 대한 의리와 호란의 치욕 설욕 명분 (복수설치)

서인들은 북벌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이용

2) 청의 정세변화(삼번의 난)를 이용하여 윤휴를 중심으로 북벌 제기 (실천X)

 

나선정벌(효종)

1) 배경 : 러시아의 남하로 청이 조선에 원병 요청

2) 전개 : 변급, 신유 두 차례에 걸쳐 조총 부대 파견

3) 결과 : 러시아군과 교전하여 큰 전과를 올림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