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해군의 중립 외교
• 임진왜란 때 광해군과 북인들의 의병 활동 주도 → 광해군 재위기 북인 집권
• 회퇴변척 (1611)
- 북인 정인홍이 이언적 (회재)과 이황(퇴계)을 비판
- 조식 옹호 → 남인의 반발
대내 정책
• 경기도 대상 대동법 실시(1608)
• 양전사업 : 양안 • 호적 작성
• 성관과 무기 수리, 군사 훈련 실시 등 국방력 강화
• 허준을 지원해 <동의보감> 편찬 마무리
• 경희궁(경덕궁) 건립, 왜란 때 소실된 창덕궁 중건
• 왜란 때 소실된 사고를 5대 사고로 정비
대외정책 : 중립 • 실리 외교
• 배경 : 여진족 급성장 → 후금 건국(1616) → 명에 선전포고 → 명의 조선 원군 요청
• 전개 : 명 지원을 위해 강홍립 파견 → 강홍립 후금에 파견
• 결과 : 명의 원군 요청 지속 → 광해군 적절히 거절, 후금과의 친선 도모
▪ 인조반정 (1623)
• 원인
1) 중립외교 정책에 대한 서인의 반발
2) 폐모살제 (인목대비 유폐, 영창대군 살해, 임해군 사사)
• 전개 : 서인의 반정 주도 → 광해군 폐위, 북인 몰락, 인조 즉위
• 영향 : 반정 이후 서인은 남인 일부와 연합하여 정국 운영 → 상호 비판적 공존 체제
▪ 정묘호란(1627)
• 배경
1) 서인들의 친명배금 정책
2) 모문룡 가도 사건(1622), 이괄의 난(1624)
• 전개 : 광해군 보복 명분으로 후금 침입 → 인조의 강화도 피난
• 의병 : 정봉수(철산 용골산성), 이립(의주)
• 결과 : 후금과 형제 관계 체결 (정묘약조)
※ 모문룡 가도 사건 (1622)
• 명의 모문룡이 후금이 차지한 요동 지방을 빼앗기 위해 평안도 가도에 주둔 → 후금 자극
※ 이괄의 난 (1624)
•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
• 함양 함락 → 인조 공주 피난 → 진압 후 이괄의 잔당 후금으로 도주 → 조선 정세 밀고
▪ 병자호란(1636)
• 배경 : 후금이 국호를 청으로 변경 → 군신관계 요구 → 주전론 (김상헌, 윤집 등) VS 주화론 (최명길)
• 전개 : 청 태종의 침입 → 임경업의 백마산성(의주) 우회 → 개경 함락 → 한양 함락 → 인조, 조현세자 남한산성 피난 → 45일간 저항 → 삼전도의 굴욕 (청 태종에게 항복, 삼전도비)
• 결과
1) 군신관계 체결, 명과의 관계 단절
2) 소현세자, 봉립대군, 척화론자 (주전파) 3학사 청에 압송
3) 서북 지역 황폐화, 수만 명의 백성이 청에 인질로 끌려감 (환황녀 문제)
• 영향 : 청에 대한 적개심과 문화적 우월감(열등감X)으로 북벌론 제기
▪ 북벌론과 나선 정벌
• 북벌운동
1) 효종
송시열, 송준길, 이완 중용 → 어영청 강화 (군대 양성)
명에 대한 의리와 호란의 치욕 설욕 명분 (복수설치)
서인들은 북벌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이용
2) 청의 정세변화(삼번의 난)를 이용하여 윤휴를 중심으로 북벌 제기 (실천X)
• 나선정벌(효종)
1) 배경 : 러시아의 남하로 청이 조선에 원병 요청
2) 전개 : 변급, 신유 두 차례에 걸쳐 조총 부대 파견
3) 결과 : 러시아군과 교전하여 큰 전과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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