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병운동
을미의병(1895)
• 배경 : 을미사변, 단발령
• 대표 의병장 : 유생 의병장 중심, 유인석, 이소응, 허위, 기우만
• 활동 : 존왕양이 표방, 일본 침략군 공격, 단발을 강요하는 친일파 관리 처단
• 해산 : 아관파천을 계기로 친일 정권 붕괴 → 단발령 철회, 국왕의 해산 권고 조칙 → 자진 해산
을사의병(1905~1906)
• 배경 : 을사 늑약(1905. 11, 제2차 한일협약)
• 대표 의병장 : 민종식(충청도 홍주성 점령)
최익현(전북 태인 봉기 → 순창 진격 → 스스로 체포됨 → 쓰시마섬에 끌려가 순절)
신돌석(평민 의병장 출현)
• 상소운동 : 조병세, 이상설, 안병찬, 민영환
• 자결 순국 : 민영환, 조병세, 송병선, 홍만식(홍영식 형)
• 오적 암살단(자신회, 1907) : 나철, 오기호 → 을사5적 습격
• 기산도 등이 을사오적 처단을 위한 결사대 조직
• 언론 : 황성신문은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과 ‘오건조약청체전말’게재, 대한매일신보는 고종의 을사조약 무효 선언 친서 발표
• 정부의 노력
1. 미국 대통령에게 특사 헐버트 파견(1905) → 조•미수호통상조약 거중조정 근거, 가쓰라•태프트 밀약 때문에 면담 실패
2. 헤이그 특사 파견(1907.6) : 이준, 이상설 이위종 → 고종 강제퇴위(1907.7)
정미의병(1907)
• 배경 : 고종의 강제퇴위 (1907.7) →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에 따른 군대 해산
• 전개
1. 군대 해산 당일 시위대 대대장 박승환 자결 → 서울 시위대 봉기 → 원주, 홍천, 충주 강화도 등 지방 진위대 동조 → 의병 부대 합류
2. 13도 창의군 결성(1907.12)
- 서울 주재 각국 영사관에 서신 발송(의병을 국제법상 교전단체로 인정 요구)
- 서울진공작전(1908) : 경기도 양주 집결 → 허위의 선발대가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했으나 실패
• 의의 : 의병의 전쟁화, 평민•군인 출신 의병장 수가 양반 유생 출신 의병장 수 증가
• 한계 : 평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 홍범도 서울 진공 작전에서 배제, 총대장 이인영은 부친상을 당하자 낙향
• 영향 : 서울 진공 작전 실패 후 호남 의병의 유격전 치열 → 일제의 남한 대토벌 작전(1909.9)으로 위축 → 간도와 연해주로 근거지를 옮겨 향전
의사들의 활동
• 장인환•정명운 의거(1908) : 외교 고문 스티븐스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
• 안중근 의거(1909) :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 사살 → 뤼순(여순) 감옥 수감 →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집필 → 1910년 사형 집행
• 이재명 의거(1909) : 매국노 이완용 암살 시도
<인물정리>
※ 면암 최익현 (1833~1907)
• 1868년 경복궁 중건 반대 상소
• 1873년 서원 철폐를 비판한 계유 상소 → 대원군 하야
• 1876년 5불가소 (지부복궐척화의소, 왜양일체론) → 강화도 조약 반대
• 1895년 단발령에 강력하게 반대
•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직후 청토오적소(을사오적 처단 주장)
• 1906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킴, ‘포고팔도사민’(궐기 촉구)
• 1907년 대마도에서 순국
※ 도마 안중근 (1879~1910)
• 1906년 삼흥학교 설립(평안남도 진남포)
• 1907년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
• 1907년 연해주에서 의병장으로 활약(대한의군참모총장)
• 1909년 동지들과 단지회(비밀결사) 조직
• 1909년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사살
•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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